아프간 여성들 “빵, 일, 자유를”… 밤마다 목숨 건 ‘스프레이 낙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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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정은기자
기사입력 2022-01-13 [15:00]

아프간 여성들 “빵, 일, 자유를”… 밤마다 목숨 건 ‘스프레이 낙서’

거리시위 탈레반이 강경 진압하자… 담벼락에 구호 쓰는 시위로 바꿔

“잡히면 죽을 수 있지만 포기 못해”… 전통 축제 몰래 열고 계속 저항

 

[yeowonnews.com=윤정은기자] 요즘 아프가니스탄의 수도 카불에는 골목 곳곳의 담벼락에 이 세 단어가 쓰여 있다. 누군가 스프레이 페인트를 뿌려 벽에 큼지막하게 써놓은 것이다. 이 문구는 지난해 8월 미군 철군으로 탈레반이 아프간을 완전히 점령한 뒤 여성들이 시위에서 외쳤던 바로 그 구호다.

 

후다 카무시는 담벼락에 세 단어를 써넣으며 ‘무언의 시위’를 하는 아프간 여성들 중 한 명이다. 카무시는 밤이 깊어지면 스프레이를 들고 조용히 집을 나선다. 여성들과 서둘러 ‘작업’을 하고는 바로 각자 집으로 흩어진다.

 

▲ 아프가니스탄 여성이 수도 카불 도심의 담벼락에 아프간 여성 시위대의 구호 ‘빵, 일자리, 자유’를 적고 있다(위 사진). 이들은 사람들이 보지 않는 밤에 자신들의 요구 사항을 담벼락에 적는 투쟁을 벌이고 있다. 또 다른 담벼락에는 ‘여성에 대한 폭력을 멈추라’는 글이 등장했다. 영국 더타임스·아프간 매체 톨로뉴스 캡처‘Food, Work, Freedom(빵, 일, 자유).’     © 운영자

 

동아일보에 따르면 야밤의 스프레이 시위는 아프간 여성들이 최근 고안해낸 새로운 투쟁 방식이다. 탈레반이 여성의 교육권, 노동권을 요구하는 시위대를 향해 총을 겨누거나 구타하는 등 폭압적 통제를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카무시는 영국 더타임스에 “탈레반이 벽에 구호를 쓰고 있는 우리를 본다면 죽이려 들 것”이라고 말했다.

 

카무시는 반년 전만 해도 직원 35명을 둔 양복점 사장이었다. 하지만 탈레반이 양복점을 강제로 폐점시키고 집에서 못 나오게 하자 여성의 권리 보장을 요구하는 시위에 참여하고 있다. 그는 “탈레반이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일 거라고 협박했지만 우리는 그들을 폭로하기로 마음먹었다”고 했다.

 

탈레반은 20년 전 집권할 때 여성의 외출과 교육을 금지했다. 이번 아프간 점령으로 여성 탄압 정책이 부활할 것이란 우려가 커졌다. 그러자 탈레반은 여성들이 머리만 (히잡 등으로) 덮으면 일을 할 수 있다며 안심시키려 했다. 지난해 첫 공식 기자회견 때도 첫 질문을 여성 기자에게서 받는 등 이미지 변신을 시도했다.

 

하지만 우려는 현실이 됐다. 탈레반은 새 내각에 여성을 한 명도 기용하지 않았다. 또 거의 모든 직업군에서 여성을 배제했다. AFP통신에 따르면 탈레반 경찰은 “샤리아(이슬람 율법)에 따라 무슬림 여성은 히잡을 써야 한다”는 포스터를 카불 도심에 붙이며 부르카(눈만 내놓고 얼굴을 다 덮는 의복) 착용을 강제하고 있다. 탈레반은 국제사회의 인정과 자금 지원을 받기 위해 겉으론 유화적인 태도를 취하면서도 지역별로 반인권적 규칙을 공표하는 꼼수를 써서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아프간에는 한 해 중 밤이 가장 긴 날이 있었다. 카무시는 이날 우리의 동지와 비슷한 ‘얄다 축제’를 열었다. 여성들은 형형색색의 옷을 입고 모여 음악을 연주했다. 여성에게 히잡을 강요하고 가정 내 춤과 노래를 금지하는 탈레반에 저항하는 시위였다. 카무시는 “우리에게 포기는 사치”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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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간 여성들# 빵#일#자유#스프레이#낙서 관련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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