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속에서도 발로 詩를 줍는 홍찬선시인<희망열차>

2021년 가장 많은 글을 쓴 작가 홍찬선..서울 시내 곳곳은 물론 전국을 누비며 현장의 감각을 詩에 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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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영자
기사입력 2022-01-12 [20:11]

 

 

▲     © 운영자

 

도둑맞은 신축년, 임인년에 본전 찾으려나

코로나 속에서도 발로 를 줍는 홍찬선시인

사랑을 얻으려면 사랑하는 사람에게 가깝게 다가서야

 

▲  그는 현장에 간다. 서울이건 지방이건 가리지 않고......청걔천 부근으로 취재 갔던 날....   © 운영자

 

 [yeowonnews.com=홍찬선] 좋은 것은 거저 오지 않는다. 감나무 밑에 아무리 누워 있어도 홍시가 입안으로 떨어지지 않는 것처럼, 내가 원하는 것은 저절로 다가오지 않는다. 자연의 아름다움을 만끽하려면 자연으로 가야 하고, 가슴이 벌렁거리는 해돋이의 감동을 느끼려면 따듯한 이부자리를 박차고 꼭두새벽에 어둠을 가르며 산꼭대기나 바닷가로 나가야 한다.

 

발로 걷고 눈으로 보고 귀로 들으며, 입으로 맛보고 코로 냄새 맡으며 살갗으로 느끼는 육각(六覺)을 통해서만 참다운 육감(肉感)을 맛볼 수 있고, 육감을 얻어야만 진정한 즐거움을 향유할 수 있다. 달콤한 사랑을 얻으려면 사랑하는 사람에게 가깝게 다가서야 하는 것처럼, 귀차니즘에 빠져 있는 사람들은 몸 품 팔아야 얻을 수 있는 맛을 볼 수 없다. 

 

▲ 발로 뛰는 시인 홍찬선...시 한 편을 쓰기 위해 그의 발길이 닿는 곳은....지난해 5월   제주 일출봉에서..  © 운영자

 

코로나에 도둑맞은 신축년에 찾은 마라도와 백령도

2021년 신축년, 흰 소해는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도둑맞은 채 지나갔다. 코로나 감염이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한 사회적 거리두기코로나 통금이 시행됐다. 사람 만나는 게 제한되고, 9~10시에 문을 닫아야 하는 식당 노래방 까페 등 자영업자들은 생존의 위기에 몰렸다.

 

그렇다고 그냥 당한 채 앉아있을 수만은 없었다. 꽉 막혀 앞이 보이지 않을 때, 아무리 해도 머리가 돌지 않아 해결방안이 떠오르지 않을 때, 써야 할 시와 글이 있는데 첫머리가 풀리지 않아 골치가 지끈지끈 아플 때, 길을 나섰다.

 

 

배낭에 막걸리 한 병 넣고, 주머니에 메모장과 펜을 챙긴 뒤 훌쩍 떠났다. 마음 가는 대로, 발길 닿는 대로, 바람이 부는 대로, 그님이 오라는 대로, 머리를 비우고 걷다 보면, 가슴을 비우고 숨 쉬다 보면, 배를 텅 비우고 터벅터벅 가다 보면, 문득 길이 나타나고, 문득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고, 문득 시와 글의 첫머리가 술술 풀렸다.

 

길은 스승이고 걸음은 마법이었다. 간다, 간다 하면서도 이런 저런 핑계로 어버이날에 처음으로 간 마라도(馬羅島), 대한민국 최남단에서 배운 해수대도 그 중의 하나였다. 해수대는 마라도에만 피는 소금 꽃으로, 하늬바람 타고 온 소금기가 집 벽과 창문 등에 하얗게 피는 것을 말한다. 겨울에 한라산이나 덕유산 등 높은 산 위 나무에 공기의 물기가 엉겨 붙어 피우는 얼음꽃인 상고대와 비슷하다.

 

마라도 바람에는 눈물이 묻어 있을까

밤새 하늬바람이 불면 창과 벽과 가슴에

하얀 해수대가 핀다

그대 그리는 상고대일까

 

넘실넘실 물결에

덩실덩실 꿈을 보고

모락모락 물보라에

올망졸망 내일을 싣는다 <마라도, 1~2>

  

▲   안면도 만대항을 찾아 간 홍찬선 시인....거기서 그는.... © 운영자

 

가을에는 그토록 가고 싶었던 백령도(白翎島)에도 다녀왔다. 용왕님이 뱃길을 허락해야만 갈 수 있다는 그곳, 장산곶에서는 인당수를 지나면 금세 닿는 뱃길이지만 인천 연안부두에서는 4시간이나 걸리는 먼 길, 갔다가 해무가 짙고 물결이 거세면 23일은 기본이고 1주일, 심하면 한 달도 발길이 묶인다는 말 때문에 선뜻 갈 생각을 하지 못했던 곳.

 

 

하지만 서해 용왕님은 마음이 바다처럼 넓었다. 코로나를 무릅쓰고 대한민국 최서북단을 찾겠다는 단심(丹心)을 가상하게 여기고, 오가는 12일 동안 잔잔한 장판파도를 깔아 주었다. 신들이 만들어 놓은 두무진의 기암괴석과 영혼을 빼어놓을 정도로 아름다운 해넘이를 고스란히 보여주었다. 심청이 장님 아버지 눈을 뜨게 하기 위해 빠진 인당수를 바라보며 심청각에서 맞이한 해돋이도 감동이었다,

 

세계에서 가장 크고 단단한 천연비행장이 있는 사곶해변, 파도에 밀려 커다란 돌덩이가 콩처럼 동글해진 콩돌해변, 하늘로 비상하는 용 모습의 용트림바위, 오랜 풍화작용으로 사자가 이구아나로 바뀌고 있는 사자바위, 북한군의 비인간적 공격으로 하늘의 별이 된 천안함 장병들의 넋을 위로하는 천안함장병위령비, 눈과 귀의 기쁨을 위해 희생한 배를 푸근히 달래준 짠지떡과 하수오. 짧은 12일을 34일처럼 꽉 차게 보낼 수 있게 한 것은 용왕님과 하늘님의 속 깊은 배려 덕분이었다.

 

▲  화암사터에서의 셀카   © 운영자

 

모두 계획에 있었던 것이다

 번은 코로나 몽니로

 번은 태풍이 몰려와

 번째를 기다리도록  것은

바람과 안개와 황사를 말끔히 

밀어내고 눈부신 노을과 돋을볕을

선물하기 위한 계획이었다 < 백령도, 1

 

코로나에도 맺은 열매 서울특별

신축년에 마라도와 백령도만 다녀온 것도 아니다. 삼복더위 중에는 6.25전쟁 때 치열한 고지전이 벌어졌던 펀치볼(양구군 해안면)에 가서 그날의 아픔을 새겼다. 강화도의 오규원 김영태 시인, 부여의 신동엽 시인, 양양의 이성선 시인, 당진의 윤곤강 시인, 안동의 이육사 시인, 경주의 박목월 시인과 김동리 소설가의 생가와 묘소, 문학관을 찾아 그분들의 치열의 삶을 되새겼다. 고흥반도 쑥섬에서 원시림에 감동했고, 여수밤바다에서 막걸리도 마셨고, 울산 대왕암에서 멋진 해돋이도 맞이했다. 가는 곳마다 역사가 있고 보는 것마다 예술이었으며, 발로 주어보니 모두 시가 되었다.

1년 내내 서울 곳곳을 돌아다니며 월간 에 연재한 <서울특별>11월에 시집 서울특별로 출간한 것은 신축년의 백미였다. 가는 곳마다 예술이요 보는 것마다 역사이다(2) 아름다운 이 나라 역사를 만든 여성들(6)에 이은 신축년 세 번째 시집이며, 20대 대통령을 위한 경제학(9)을 합하면 4권을 출간했다.

 

▲ 제천 비봉산에서 충주호를 배경으로 ....     © 운영자

 

서울특별가 서울시인협회에서 올해의 시인상 본상을 받은 것은 6년차 늦깎이 시인으로서 더할 나위 없는 영광이었다. 지난 1, 자유민주시인연대에서 공모한 제1회 자유민주시인상에서 최우수상을 받은 데 이어 두 번째 영예였다. 자유민주시인상 수상작은 칼날 위에서 피는 꽃이란 제목으로 지난 2월 출간됐다. 더 열심히 하라는 채찍으로 알고 임인년에도 부지런히 서울과 전국을 돌아다니며 발로 시를 주울 것임을 약속한다. 서울특별에서 <인사동>칼날 위에서 피는 꽃에서 <자유와 민주>의 일부를 소개한다.

 

인사동의 시간은

들쭉날쭉 흐른다

별 볼 일 있는 사람은 느긋하게

별 볼 일 없는 사람은 종종걸음으로

아인슈타인에 앞서 걷는다

 

인사동의 나이는

제 멋대로 먹는다

삶 맛 아는 사람은 맛갈스럽게

삶 맛 모르는 놈은 퍽퍽하게

갈지자 맘대로 오고간다 <인사동, 1~2>

 

집 나간 민주를 찾습니다

그들이 목숨 걸었다던 민주는

양의 탈을 쓰고 착한 사람들을 몰이하며

그들의 탐욕을 채워주는 방패막이로만 쓰고

 

길 잃은 공정을 기다립니다

그들이 소리 높여 외쳤던 공정은

못 본지 아주 오래 됐는데 실종신고도 없이

찾으려고도 하지 않아 불공정이 판치고 <자유와 민주, 1~2>

 

▲  서울 시내 곳곳 그의 발길이 안 미치는 곳이 별로 없으니.....잠수교에서.   © 운영자

 

크리스마스 앞두고 맞은 아이스크림 비

코로나와 헤어지자!’

마스크 벗어던지고 만나지 못했던 벗들을 마음껏 만나 밀린 얘기를 나누자!’

영세 자영업자 등골 빼는 사회적 거리두기는 이제 그만!’

코로나를 이겨낼 꿈으로 시작했던 신축년이 저물어가는 크리스마스 이브 밤에 꿈을 꾸었다. 처음 가보는 일본 어느 도시 고층빌딩 아래를 지나가다가 아이스크림 비를 맞는 꿈이었다. ‘벌건 대낮에 날벼락이라든가 아닌 방중에 홍두깨라는 속담은 들어봤지만, 길을 걷다가 아이스크림 비를 맞는 것은 처음 겪는 일이다. 꿈이었는데도 실제로 겪는 것처럼 생생했다.

아이스크림 비꿈은 무엇을 예고하는 것일까. 날벼락을 맞은 셈이니 나쁜 일일까. 날아가는 새똥이 아니라 달콤한 아이스크림 비니 좋은 일일까. 꿈보다 해몽이라고 했다. 신축(辛丑)년을 보내고 임인(壬寅)을 맞이하면서 꾼 꿈에서 상상력의 비를 본다. 코로나를 이겨낼 수 있는 상상력의 비 말이다.

 

너는 흘러내려 당황했고

나는 날벼락에 흠칫했다

 

꿈에서나 나오겠지

이런 묘한 우연의 일치는

 

그것도 처음 가보는

일본의 어느 대도시에서

 

까치 똥 뒤집어쓰듯

엉겁결에 맞아버린

 

아이스크림 비

하늘이 준 상상력 비 <아이스크림 비, 전문>

 

▲  발길 닿는대로 가는 길이 아니라, 미리 정해놓고   찾아가는.....쑥섬에서 © 운영자

 

새해에도 꿈에서 맞은 상상력의 비를 시와 소설과 희곡으로 풀어낼 것이다. 2월에는 제11시집 멋진 대한민국 역사를 만드는 여성들-한국여성詩來(가칭)을 출간할 예정이다. 이어서 연말까지 첫 한시집과 전국유랍시집을 내고, 장편소설도 구상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환갑을 맞는 2023년 초봄에는 기념시집과 함께 <와글와글 홍보네 가족 시화전>을 열 계획을 갖고 있다. 옆지기인 원정 황경숙(元貞 黃敬淑) 화가와 두 딸이 그림 작품을 내고 두 아들은 축하편지를 쓰는 시화전을 준비하고 있다.

 

 

연은 거센 역풍을 맞을 때 힘차게 날아오른다 산불에 맞닥뜨렸을 때 바람을 등지고 도망가면 멀리 못가서 쓰러지고 만다. 바람을 안고 일렁거리는 불꽃을 헤치고 나아가야 화마(火魔)의 억센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있다.

 

피할 수 없을 땐 맞서 싸워야 한다. 이왕 싸울 것이라면 기쁘게 싸워 이겨야 한다.

코로나도 그렇다. 바이러스가 무섭다고 집에만 웅크리고 있으면 면역력이 떨어져 감염될 우려가 있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은 삼가더라도, 사람이 많이 가지 않는 산이나 호수, 바다와 섬 등을 다니며 체력을 기르는 것이 코로나를 이겨낼 수 있다.

 

 

임인년 새해에도 바쁜 나날이 될 것이다. 흰 범처럼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며 시를 주울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억지로 하는 게 아니라 즐거운 마음으로 발길 닿는 대로 걷고 줍는 일이라서 건강하고 행복할 것이다. 여러분들도 새해에 건강하시고 복 듬뿍 받는 나날 되시길 빕니다.

 

**시인 홍찬선(전 머니투데이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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