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훈의 상록수로 부활한 농촌운동가 최용신 <한국여성詩史>

온몸을 던져, 헐벗은 농촌의 아이들을 깨우치려 했던 최용신..심훈의 소설 '상록수'에 오늘도 살아있는...

가 -가 +

홍찬선
기사입력 2020-10-22 [18:13]

. 홍찬선이 쓰는 한국여성詩史<20>최용신

심훈의 상록수로 부활한 농촌운동가 <한국여성詩史>

"의를 위해서 일하게 하고 죽음도 남을 위해 죽게 하소서"

 

▲   안산 최용산 가념관에 조성된 최용신 선생을 찾아, 배움을 찾아 오는 아이들.  © 운영자


배움은 지식만 쌓는 것이 아니다

배움은 지식을 살아가는 방편으로 삼는 게 아니다

배움은 지식으로 세상을 왜곡하는 건 더욱 아니다

배움은 지식을 삶으로 실천하는 것,

학교에서 얻은 지식이 삶에서 실현될 때 

진실한 배움의 가치가 같이 사는 것이다

 

영신은 지식이 삶과 동떨어져 

화장품이 되고 권력이 되는 현실에서 

몸부림쳤다 벗어나고자 했다

가난과 무지가 만연해 피폐한 농촌

박제화된 지식으로 바꿀 수 없었다

그렇다고 앉아서 머리만 쥐어뜯을 순 없어

 

황해도 수안군 천곡면 용현리에서

경상북도 영일군 옥마동에서 마주한

농민과 농촌과 농업에 신학공부가 

해줄 것이 없다고 여겨졌다 

갈등과 자책에 빠져 결국 학업을 중단하고

수원군 반월면 샘골(泉谷)로 갔다*

 

▲    의를 위해서 일하고 남을 위해서 죽기를 원했던 최용신 © 운영자

 

의욕만 있다고 해서 다가 아니었다

맞서 싸워야 할 것은 가난과 무지만이 아니었다

주민들의 냉소와 비관주의는 거대한 암벽,

파리 안 잡아도 파리에 물려죽은 놈 하나도 없었다

책상물림 젊은 여자가 세상을 뭘 아느냐

말 한마디 몸 한 동작이 비수가 되어 돌아왔다

 

여기서 그만둘 수는 없었다

지성이면 하늘도 감동한다는데

순박한 농촌 사람들이 움직이지 않을 리 없다는

믿음만이 힘이었고 정성만이 기댈 언덕이었다

이 몸은 남을 위하여 형제를 위하여 일할 것입니다

일도 의를 위해서 하고 죽음도 남을 위해 죽게 하소서**

 

뜻이 굳으면 일은 이뤄지게 마련이었다

뒷짐 쥐고 있던 농민들이 모금활동에 나섰고

솔밭 주인 박용덕이 토지 1500평을 기증했다

천곡강습소가 세워졌고 

학생 110여명에게 배움터 되었다

주린 배 움켜쥐고 미래 위한 꿈 키웠다

 

▲   생전에 최용신이 야간학교로 사용하던...[사진=연합뉴스=여원뉴스 특약]   © 운영자

 

영신은 또 한 번의 도약을 시도했다

일이 잘 풀린다고 예서 만족할 수는 없는 일,

농촌운동의 도화선 만드는 신지식과 구상 마련하려

일본 고베(神戶)여자신학교 사회사업학과에 입학했다

운명은 쉽지 않았다 과로와 영양부족으로 

각기병에 걸린 몸으로 샘골로 돌아왔다 

 

몸 하나 스스로 추스르기조차 힘들었어도

YWCA가 샘골강습소 보조금 지원을 끊었어도 

병 든 몸이라고 한갓지게 누워 쉬지 않고  

샘골과 한국 농촌을 살리고자 마지막 불꽃을 태웠다

 

나는 갈지라도 천곡강습소를 

영원히 경영하여 주십시오

샘골 여러 형제를 두고 어찌 가나

애처로운 우리 학생들의 전로를 어찌하나

어머님을 두고 가매 몹시 죄송하다

내가 위독하다고 각처에 전보하지 마라

유골을 샘골강습소 부근에 묻어주오***

 

▲   최용신이 남긴 유언  © 운영자



영신은 죽지 않고 살아 있었다

안산시 상록구 본오동 879-4 상록수공원에

스물여섯 살 짧지만 길게 살았던 삶

그대로 부활해 도심(都心)의 허파로 돌아와  

참새와 까치의 재잘거리는 보금자리로

샘골 사람들의 아픈 눈물을 닦아주는 쉼터 됐다

 

백 년 앞서 울리던 종소리 여전히 울리고

위대한사람이 되는데 네 가지 요소가 있으니

첫째가 가난의 훈련이요

둘째가 어진 어머니의 교육이요

셋째가 청소년 시절에 받은 큰 감동이요

넷째는 위인의 전기를 많이 읽고 분발함이라는

영신의 말씀도 여전히 가슴 속에 쟁쟁하다****   

 

▲   최용신의 천곡학원에서 최용신에게 배우던 학생들..   © 운영자

 

 

* 현 안산시 상록구 본오동

** 최용신이 1919년 4월2일 올린 <새벽종소리에 따라 올리는 기도> 중에서.

*** 최용신 선생의 마지막 유언 중에서.

**** 최용신 선생의 어록 중에서.

***** 최용신(崔容信, 1909. 8. 12~1935. 1. 23): 농촌운동가. 함남 덕원군 현면 두남리에서 최창희의 3녀2남 중 차녀로 태어났다. 어릴 때 천연두를 심하게 알아 얼굴과 정강이 등 온몸에 마마 자국이 있었다. 원산에 있던 루씨여자보통학교와 루씨여자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에 있는 협성신학교에 진학했다. 이곳에서 왕에스더(黃愛德) 교수를 만나 농촌계몽운동에 뜻을 두고 활동하게 됐다. 

황해도와 경상북도로 나갔던 봉사활동에서 농촌의 실상을 직접 눈으로 본 뒤 신학공부에 매달리지 못하고 학업을 중단했다. 1931년 10월10일, 경기도 수원군 반월면 샘골마을(현 안산시 상록구 본오동 일대)로 한국 YWCA 농촌지도원으로 파견됐다. 그는 일본 유학을 떠났던 1934년 3월부터 각기병으로 유학을 중단하고 샘골로 돌아온 그해 9월을 제외하곤 샘골에서 살았다. 피로와 각기병 및 정신적 고통 등이 겹쳐 1935년 1월 경기도립 수원병원에 입원했다가 1월23일 서거했다. 그의 묘는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본오동 879-4 상록수공원의 최용신기념관 옆에 있다.  

심훈(沈熏, 1901. 9. 12~193. 9. 1)의 소설 『상록수』의 무대는 샘골이며 여주인공 채영신(蔡永信)은 최용신을 모델로 한 것이다. 1964년 한국여성단체협의회에서 용신봉사상을 제정해 해마다 시상하고 있다. 199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   팩트 중심의  <한국여성詩史>를 집필하고 있는 작가 홍찬선...그는 리얼리티를 찾아, 항상 주인공과 관련된 역사의 현장을 직접 방문한다. © 운영자



홍찬선의 다른기사보기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band naver URL복사

#한국여성詩史,#최용신,#심훈,#상록수,#홍찬선,#여원뉴스 관련기사

댓글

i

댓글 수정 및 삭제는 PC버전에서만 가능합니다.

최신기사

URL 복사
x

PC버전 맨위로 갱신

Copyright ⓒ 여원뉴스.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