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 매춘부로 팔아넘기려 했다” 머라이어 캐리의 쇼킹 고백

누구에게나 어두운 과거가 있을 수 있다. 그 힘든 과거를 딛고 일어선 머라이어 캐리에게 축복 있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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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정은기자
기사입력 2020-09-28 [12:37]

머라이어 캐리의 고백 “가족이 매춘부로 팔아넘기려 했다”

‘팝의 여왕’ 머라이어 캐리, 가족사 담은 자서전 펴내

 

[yeowonnews.com=윤정은기자] “오랫동안 언니와 오빠는 나를 난도질했다. 삼류 잡지, 쓰레기 사이트에 나에 대한 거짓말을 팔았다. 내가 12살 때 언니는 나를 신경안정제(바륨)에 취하게 했고, 코카인을 줬으며, 나에게 펄펄 끓는 차를 끼얹어 3도 화상을 입혔다. 포주에게 나를 팔아넘겨 매춘을 시도하기도 했다.”

 

역사상 여자 가수 중 가장 많은 음반 판매, 1990년~2020년대까지 매 10년 사이 빌보드 1위 곡을 한 곡 이상 낸 최초의 가수인 머라이어 케리(50)가 출간에 앞서 공개한 자서전 ‘머라이어 케리의 의미(The Meaning of Mariah Carey)’에서 불행했던 가족사를 털어놨다. 오는 29일 정식 발간을 앞두고 캐리는 책에 대해 지난 24일 애플TV플러스를 통해 오프라 윈프리와 인터뷰를 가졌다.

 

▲ 애플티비     © 운영자

 

조선일보에 의하면 1990년 데뷔곡 ‘비전 오브 러브’로 혜성같이 등장해, 빌보드 싱글차트 1위만 19곡, 그래미의 수많은 수상 기록과 대중음악계 거물인 토미 머톨라 소니 회장과의 결혼까지. 외모만큼 화려한 이력 뒤 처음 듣는 그의 과거에 미국이 흥분했다.

 

흑백 이혼 가정 속, 가족에게도 학대당한 삶

캐리는 1970년 미국 뉴욕에서 베네수엘라 혈통을 가진 흑인 아버지 앨프리드 로이 케리와 아일랜드 혈통인 백인 어머니 퍼트리샤 사이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항공공학자였고 어머니는 오페라 보컬 코치였다. 둘은 앨리슨, 모건, 머라이어 이렇게 세 남매를 낳았고, 캐리가 세 살 때 이혼했다. 혼혈 가정에서 태어난 캐리는 흑백 어느 쪽에도 속하지 못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캐리는 “형제들은 그들보다 밝은 내 피부색을 질투했다. 그들은 내 피부색이 밝아서 더 살기 편하다고 느낀 것 같았다”고 썼다.

 

흑인 아버지가 있다는 것은 백인처럼 보이는 소녀에게 상처였다. “어릴 때 베키라는 백인 친구가 있었어요. 집에 놀러 온 베키는 제 아버지를 보고 무서워 울음을 터트렸죠.” 그의 가정사는 나쁜 여자아이들의 먹잇감이 되기 좋았다. “한번은 여자애들이 제게 같이 놀자며 한적한 곳으로 데려가 놓곤, 아무도 없는 곳에 가둬놓고 ‘깜둥이’라고 소리지르며 놀렸죠.”

 

성공은 최고의 복수였다. 훗날 캐리는 유명해진 후 그 여자아이의 집을 찾아갔다. 하지만 성공의 달콤함은 여기까지였다. 그는 “성공한 후 가족들은 날 가발 쓴 현금 인출기처럼 여겼다”고 했다. 흑백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캐리가 흑인 잡지인 ‘에센스’에 ‘가장 오해받는 흑인 여성’이라며 표지 모델로 실린 건 엄청난 칭찬이라고 했다. “제가 몇 번이나 말했는데도, 사람들은 제가 흑인인 걸 몰라요. 전 그것이 버림받은 것으로 느껴졌죠. 저를 지지해줄 특정한 종족이 없다고 느꼈어요.”

 

▲ 화려한 모습 뒤에 상처받은 소녀가 있었다. 머라이어 캐리가 자서전에 솔직한 개인사를 고백하며 화제다. 사진은 2018년 미 라스베이거스 아이하트라디오 뮤직 페스티벌에서 공연 중인 머라이어 캐리. /게티이미지코리아     © 운영자

 

감옥 같았던 결혼 생활

어릴 때부터 가수가 꿈이었던 캐리는 1987년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맨해튼으로 갔고, 코트 보관실에서 일하다 브렌다 K 스타의 보조가수가 됐다. 그리고 브렌다가 소니 뮤직의 회장인 토미 머톨라에게 캐리를 소개했다. 토미는 그녀의 성공을 도왔고, 6년 뒤 첫 남편이 됐다. 케리가 24살, 토니는 44살이었다. 그러나 토니도 그의 버팀목이 되지 못했다. 4년 뒤 둘은 별거했고 1년 후 이혼했다.

 

“왜 결혼했느냐고요? 제가 어디든 편하게 가게 해주길 바랐죠. 친구와 네일숍이라도요. 그는 그것마저 허용하지 않았어요. 다른 사람과 이야기하는 것도요.”

 

캐리는 머톨라와의 신혼집을 ‘싱싱 교도소’라고 불렀다. 싱싱 교도소는 뉴욕주 교도소 이름 중 하나다. 집 곳곳에는 경비원과 카메라가 있었다. 그가 잘 때 캐리가 혼자만의 시간을 갖기 위해 조용히 일어나면 “어디야, 뭐해?”라는 인터폰 소리가 들렸다. “한번은 친구와 버거킹에 감자튀김을 사러 갔는데 난리가 났어요. 총을 찬 경호원들이 절 찾으러 다녔죠. 집을 떠난 지 5분이 지났을 뿐인데.”

 

캐리는 “난 한 번도 내가 아름답다고 생각한 적도, 존재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 적도 없다”며 “그러나 두 아이를 키우며 트라우마를 치료받고 있다”고 했다. 두 아이는 두 번째 남편인 배우 겸 래퍼 닉 캐넌과 사이에서 낳았다. 둘은 2016년 이혼했다. 머라이어 캐리는 “이번 책을 쓰며 카타르시스와 더 많은 자유를 느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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