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남자들의 노리개 되기를 거부하오." 한국여성詩史<11>

한 시대와 맞섰던 여성의 비극, 남성시대와 맞섰던 능력 있으나 힘 없던 여성의 비극을 나혜석에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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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찬선
기사입력 2020-09-21 [09:34]

홍찬선이 쓰는 한국여성詩史<11> 나혜석

온 몸으로 벽을 깨려다 산화한 나혜석

"나는 남자들의 노리개 되기를 거부하오."

 

▲   어두운 시대와 맞장 뜨려다가 망가져버린 나혜석....그녀의 자화상  © 운영자


시대를 앞서 산다는 건 

견디기 힘든 비극과 벗 될 각오해야 했다

금강석보다 강하고 고래 힘줄보다 질긴

고정관념을 깨고 뛰어 넘는다는 건

가냘픈 한 인생,

속으로 썩어 문들어지는 삶,

갈기갈기 박살나는 것 견뎌야 했다

 

식민지 조국의 아픔을 저항했을 것이다

3.1대한독립만세운동으로도 의열단으로도*

무너뜨리지 못하고 견고해가는 일제 수탈,

조국 백성의 고통을 모른 체하고 

어둠을 더욱 캄캄하게 만드는 친일로 

변절해 간 최린을 깨우치려 했을 것이다**

 

▲    수원시 팛달구에 조성된 나혜석 거리.... © 운영자

 

말과 몸의 표현이 

시대가 받아들일 수 있는 품을

크게 벗어났을 것이다

 

그 뜻이 제대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아이는 엄마 살점 떼어가는 악마라는 말이***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의 오해를 불러일으켰다

달걀 몇 개로 단단한 바위를 깨뜨리려다

스스로 무너져 내렸다 

발버둥 쳐도 버림받았다

그 누구도 하소연에 귀 기울이지 않았다

 

▲    나혜석의 난파선 같은  생애를 그린 나혜석 일대기... © 운영자

 

대한의 남성들아 인형을 원하는가

나는 그대들의 노리개를 거부하오

내 몸 불꽃으로 타올라 한 줌 재 될지언정

언젠가 먼 훗날 우리 후손 여성들은 좀 더 

인간다운 삶을 살면서 내 이름을 기억할 

헛되더라도 믿었을 것이다****

 

억하심정이었을 것이다

21세기 문법으로 부르짖는 절규를 

백안시하는 20세기의 닫힌 속물들에게 

대한의 첫 여성 서양화가로서 

근대적 여성인권을 높이려 한 몸부림이었을 것이다

 

▲  나혜석 그는 망가진 조선의 딸이었다. 시대의 벽에 부딪쳐 인생 자체가....    © 운영자

 

넘치는 재능과 에너지를 

절제하는 건 비겁함이란 생각이*****

거침없는 언행으로 쏟아졌다

아직 깨어나지 않은 조국에서 돌아온 건

행려병자로 긴 삶 짧게 끝낸 것이었다 

 

죽는다고 모든 게 끝난 것은 아니었다

시대를 앞서가면서 겪은 외로움은

본뜻과 다르게 남편과 자녀들에게 준 고통은

찾는 사람 아는 사람 별로 없는

나혜석거리에서 그대로 묻어났다

 

그의 이름을 기억하는 숫자로 

그는 위안을 삼을 수 있을까 

언제쯤 그는 두 발 뻗고 잠 잘 수 있을까

 

▲  '나혜'석'을  쓰기 위해 나혜석 거리를 방문한  '한국여성詩史' 의 작가 홍찬선 . 그 뒤로 나혜석의 동상이.. © 운영자


* 나혜석은 1919년 3.1독립만세운동과 의열단에서 활동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 나혜석은 남편 김우영과 프랑스 여행을 하던 중 최린을 만나 연애를 했다. 귀국해서 최린에 대해 <정조유린>을 이유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해 상당한 금액의 합의금을 받아냈다.

*** 나혜석이 잡지 <삼천리>에 1934년 기고한 「이혼고백서」 일부.

**** 나혜석이 잡지 <동명>에 기고한 「母된 감상기」.

***** 나혜석 둘째 아들, 김진 전 서울법대 교수가 쓴 『그땐 그 길이 왜 그리 좁았던고』에서.

****** 정월 나혜석(晶月 羅蕙錫, 1896~1948); 수원에서 출생한 한국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 인형이 되기를 거부한 신여성으로 유명하다. 일본 여자미술전문학교에서 유학했고 귀국 후 정신여학교 미술교사를 지냈다. 3.1만세운동 때 투옥됐으며 의열단을 지원한 기록도 있다. 변호사 김우영과 결혼해 3남1녀의 자녀를 두었다. 

파리 여행 중에 최린을 만나 불륜을 저질러 이혼당했다. 최린을 상대로 ‘정조유린죄’에 대한 위자료 1만2000원의 소송을 제기했다. 최린 측 요청으로 소송금액의 절반 정도를 받고 화해했다. ‘여자도 인간이다’라는 주장을 되풀이하며 여자들의 인권과 권리를 존중할 것을 요구했다. 

1948년 12월, 원효로 시립자제원에서 무연고 행려병자로 사망했다. 수원시 팔달구 인계동 효원공원부터 서쪽 600m 거리를 ‘나혜석 거리’로 조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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